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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향기

야생 길들이기.

한적하고 호젓한 읍내 촌로를 따라가다 보면 밭두렁 틈틈한 곳에는 그 흔한 상추나 쑥갓 허드레것들이 심어져 있는경우가 다반사 였지만 이젠 여뉘집 처마밭 한귀퉁이 옥상 화분에서나 화초처럼 고이 길러지는 관상용인듯 무공해 귀한 채소로 정성의 손끝에서 애지중지 길러진다.

반면 너무흔한 대량생산 재배로 사시사철 손쉽게 구입할수있는 만연한 것들이기에 ,그 옛적 자연적인 햇빝과 수분공급으로 자유롭게 자라던 쳔해자연 조건으로 크는것이 아닌 인위적인 보살핀 정성으로 자라는것에 대한 비위 뒤틀림이 앞서간 문명의 이기와 함께 슬그머니 그리운 추억을 북돋는다.

이름하여 야생 길들이기 모든것이 인공적인 재배와 사육으로 인한 귀한것이 사라진 대량공급의 원천이 되는 생산과 재배 ,얼마만큼 고급화의 차별지향으로 가는냐에 따른 고품격을 추구하는 시대,지금 우리사는 세상에서 무엇이 그토록 귀한것이 있을까?

사람의 끝없는 이기적인 욕심과 불로장생 영원불멸의 욕망이 빚어낸 커다란 죄악인지도 모를 영생을 갈구하는 우리 마음의 부도덕함지나친 불량심의 무절제가 가져온 안일무사 편리함만을 추구한 사람과 사람사이 개인적 메카니즘으로흘러가는 따뜻함이 결여된 단절의 소치에서 오는것은 아닐까.

온천지 산을 헤매 나물을 뜯고 약초를 캐고 신의 섭리대로 자연의 섭리대로 옮겨지고 자생으로 자라는 자연의 신비와 공급을 따르지 못한 수요에 대한 존귀한 희귀성이란 과학의 발달로 점점 대중화 수월한 대량화의 보급은특별히 존귀한것에 대한 희소성에 대한 가치의 희열을느낄수있는 나만의 은근한 자부심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이 또한 물질 만능이 가져다준 우리들의 치명적인오류가 아닌가 싶다 ,아주 오랫적 주먹밥 한덩이로 산과들을 헤매이며 온갖 나물들을 찿아 망태가득 뜯어와 한 양재기에 얼마씩 받고 나물장수집에 팔기도 하고 삶아 데쳐서 묵나물 건조로저장해두면훈날의 양식이 되었건만 그리도 힘들게채취되는 산채류도 계절을 잃고 양식재배로 대량생산되는 길들여진 야생의 순진함으로 온실속의 화초로 키워지고마음만 먹으면 그 무엇이든 내 뜰안에서 해결할수있는 너무도 쉬운세상이왠지기쁘지만은 않다.

오늘은 우연히 길섶을 지나다 본 두릅나무,아무곳에나 흔하게 자생하지 않는 가시나무 대궁마다 하나씩 피어나는 두릅나무,길가옆 뉘집 밭인가에 무수히 심어져 있다,이또한도 분명 산에 자생하는 그나무들을 마구 캐어 자신들의 밭에 수없이 심어놓았을터,아마도 앞으로 몇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자연은 사라지리라 비단 이것뿐이랴 !

자연적 자생하는것들도 어느덧 인간 곁에서 재배되어 공생하리라.점점더 살아갈수록 자연에서 얻을수 있었던것에더이상 위안을 받지 못하리라.모든것이 인스턴트화되가는 인간미 결여된 짧은애착 귀한것없는 시시함들이 인간들의 끈끈한 기다란 정들을 끊어놓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과학의 발달과 문명의 이기들에 의한 손쉬운 커뮤니케이션들은 아나로그의 끈끈한 인간적인 정서에 머물지 못하고 감각적인 디지탈의 냉정함과 함께 추억을 지우며 가는것이다.

야생을 길들이는 시대가 되었다,자연과 사람과 하나되어 세상만물이 우리곁에서 공생하는 메탈적인 건냉소 ,어느날엔가 인간은 물위에 기름처럼 겉돌게 되지는 않을까. 괜한 우려와 상심,자연의 야생 그자체로 인간과 함께 서로 힘겨루기 숨박꼭질로 공존해야 할것이란 내생각. 그리하여 나이가 들어갈수록 지금의 편리함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럽지 도 부합하지도 못하는거슬림 내몸에 맞지않는 옷을입을 뻘쭘함으로 황새쫒아가는 뱁새의 심정을 누가 알까?모든것이 불편하고 번거로웠던 그시절이 그리워 지는건 왜일까? 아! 돌아가고 싶다 아! 옛날이여 !